지금으로부터 12년 전,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을 겨냥한 혐오 시위가 확산했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들의 모임)’ 등 넷우익 시위대가 도쿄와 오사카의 한인 타운을 찾아 노골적인 인종차별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음악 잡지 편집장으로 일하던 노마 야스미치 씨는 경찰에게 넷우익 집회를 허락하지 말라고 항의 전화를 했다가 ‘합법 시위는 막지 못한다’는 말을 들었다. 트위터에 “우리도 ‘시바키 부대(혼내는 부대)’라는 이름으로 모이자”고 제안을 했는데 열흘 만에 50명이 모였다. 반년 후 2000명이 넷우익 시위대를 둘러쌀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국내에는 백경게임 영화 〈카운터스〉로 알려진 ‘반민족주의 행동집단(C.R.A.C.:Counter-Racist Action Collective)’의 시작이다. 이토 씨. ⓒ이토 다이스케 제공 손오공릴게임예시 사업가 이토 다이스케 씨도 그중 한명이었다. ‘착한 한국인도 나쁜 한국인도 모두 죽여라’와 같은 끔찍한 구호에 “강한 혐오감”을 느꼈다. 노마 씨의 트윗을 보고 “즉흥적으로” 참여했다. 이 시민 연대는 맞불 집회를 열어 ‘차별하지 말라’는 피켓을 들고, 재특회가 퍼트리는 잘못된 주장을 바로잡는 활동을 했다. 일부 행동주의자들은 넷우익 시위대를 막기 위해 몸 릴게임갓 싸움까지 벌였다. 이들의 끈질긴 활동이 불씨가 되어 2016년 5월 일본에서 처음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혐오 표현 방지법)’이 통과되었다. 최근 한국에서 혐중 시위가 전국적으로 번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혐한 시위에 맞선 카운터스 사례가 다시금 소환되고 있다. 차별에 반대하는 대항 세력은 어떻 바다이야기합법 게 법 제정까지 이끌어냈을까? 그 이후 혐오 시위는 줄어들었을까? 당시 카운터스를 이끈 노마 야스미치, 이토 다이스케, 와타나베 마사유키 교수(대동문화대학 교육학과)를 각각 서면과 화상 등으로 인터뷰했다. 모두 영화 〈카운터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지난 12년 동안 세대교체가 이뤄졌지만, 세 사람은 ‘카운터’로서의 활동을 저마다 이어오고 있었다. 바다이야기게임장 노마 씨. ⓒ노마 야스미치 제공 C.R.A.C를 결성했던 노마 씨는 카운터스 활동이 일본 민주주의에 미친 영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랫동안 시위나 항의에 익숙하지 않았던 일본 시민사회에서 민족 차별에 맞서 일어선 사람들이 많았다는 건 뜻밖의 일이었다.” 2013년엔 헤이트 스피치라는 단어가 일본에서 올해의 유행어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였다. “서구의 극우 세력은 이상적인 국가의 예로 일본을 자주 언급하는데 ‘극우에 맞서는 시민의 존재’는 일본이 그런 이미지와 다르다는 사실을 일본인 스스로에게도 보여주는 역할을 했다.” 카운터스 활동 3년 만에 혐오 표현 방지법이 제정되었다. 일본에 거주하는 외국 출신자와 그 자녀에 대한 차별적 언동이 ‘용인되지 않는다’고 명기됐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 대책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도쿄와 오사카 등에서 관련 조례를 만들기도 했다. 노마 씨는 “아베 정권 한가운데서 이 법이 제정된 것이 정말 획기적이고,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의회 다수를 차지한 자민당의 찬성 없이는 법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와타나베 교수는 “당시 자민당 의원들을 데리고 헤이트 스피치가 극심하게 벌어졌던 장소이자 재일한국인들이 많이 사는 가와사키라는 지역에 직접 방문했다. 직접 가본 뒤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다”라고 전했다. 전국민적 여론이 뒷받침되었다. 일본 재특회와 판박이처럼 닮은 혐중 시위 그 결과, 재특회 활동은 점차 쇠퇴했다. 재특회를 지지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다는 합의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처벌 규정이 없어서 실효적이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카운터스는 그후로도 실제 처벌 조항을 담아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최근에는 더욱 형해화되어 공허한 법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혐오 발언을 명확히 비판하는 등 정치 지도자의 거버먼트 스피치(Government Speech)가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정치인이 혐오 발언을 비판하는 데 소극적이다. 이 법의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인은 극히 소수다(노마).” 와타나베 씨. ⓒ와타나베 마사유키 제공 실제로 거리 시위가 줄었을 뿐, 온라인 상의 혐오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와타나베 교수는 말했다. 2013년 카운터스 활동 당시 ‘오시라세 부대(알려주는 부대)’로 활동한 그는 여전히 모니터링 활동을 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괴롭힘과 인종차별, 혐오에 대해 연구 중이다. “최근 일본 내 쿠르드인과 중국인에 대한 혐오로 그 공격 대상이 넓어졌다. 예를 들면 SNS에 ‘가와구치에 살고 있는 일본인을 피난시키고 쓸데없이 자리 차지하고 있는 민족들을 정화시키자’ 등의 발언이 심심찮게 보인다.” 12년이 지난 지금, 일본 사회가 더 극우화되고 있다고 세 사람은 우려했다. ‘일본인 퍼스트’를 내건 참정당이 올해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크게 약진하는가 하면 ‘외국인 배제’를 주장하는 시위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토 씨는 과거와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 일본에서 확산하는 외국인 배제 시위는 과거 재특회에 대한 반성 때문인지 ‘죽어라’ ‘죽이자’ 같이 누구나 명백히 혐오로 인식할 수 있는 발언은 하지 않는다. 대신 ‘일본인 퍼스트’처럼 겉으로 보기에는 차별로 보이지 않는 표현을 사용해 주장을 펼친다.” 노마 씨는 현재 유튜브 채널 ‘노 헤이트 TV(NO HATE TV)’에서 ‘카운터’로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채널에는 ‘일본의 이슬람포비아’ ‘혐오 집회의 현재 위치’ ‘정치 폭력의 시대’ 등을 주제로 한 팟캐스트가 올라온다. 올해 1월 윤석열 지지 집회를 취재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가 중국인 혐오가 커지고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고 했다. “7월에 대구의 화교 학교에서 열린 혐중 시위는 2010년 재특회 모습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었다. 직접적으로 참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일본의 반차별 운동은 한국 시민사회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 나타나는 중국인 혐오 발언은 15년 전 일본의 모습을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인다.” 의 한 장면. 카운터스 활동은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인디스토리 제공" class="thumb_g_article" data-org-src="https://t1.daumcdn.net/news/202511/18/sisain/20251118063700945myxz.jpg" data-org-width="1202" dmcf-mid="86xsAx9Ue9" dmcf-mtype="image" height="auto" src="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1/18/sisain/20251118063700945myxz.jpg" width="658"> 2018년 영화 <카운터스>의 한 장면. 카운터스 활동은 헤이트 스피치 해소법 제정으로 이어졌다. ⓒ인디스토리 제공 극우 정치가 전 세계적 흐름으로 커져가는 가운데 외국인을 배제하자는 주장이 공통의 구호가 되고 있다. 와타나베 교수는 헤이트 스피치의 근간에 가짜뉴스가 있다고 짚는다. “재특회라는 단체 이름에서 보듯이 이들은 ‘재일조선인들은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 범죄를 수없이 저질러도 보도되지 않는다’는 가짜뉴스를 기반으로 헤이트 스피치를 해왔다. 언론에서 가짜뉴스 팩트 체크를 해서 뉴스를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혐오의 기저에 깔린 것이 거짓 정보이기 때문이다.” 근본적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지만 혐오 발언으로 상처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와타나베 교수는 지적한다. “이 문제가 좌익이나 우익의 문제가 아니다. 헤이트 스피치를 방치하면 혐오범죄가 되고 그게 심각해지면 내전으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그간 제노사이드로 이어지는 비극을 마주해왔다. 비처럼 쏟아지는 헤이트 스피치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다면 우산을 씌워서 보호해야 한다.” 김영화 기자 young@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