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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에서 김정은을 쳐다보며 눈물 흘리는 평양 시민들. 이들은 생애 전 과정에서 심리 조작을 당한 표본들이다. 조선중앙TV 캡처
‘파블로프의 개’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개에게 먹이를 줄 때마다 종소리를 내자, 나중엔 개가 종소리만 듣고도 침을 흘린다는 것이다.
190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러시아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는 이 실험을 통해 원래 관련 없던황금성게임
두 자극이 연합될 때 같은 반응이 일어나는 ‘조건 형성’을 증명했고, 현대 행동주의 심리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파블로프의 개는 인간 심리나 학습 과정에 대한 이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불행하게도 이 연구의 의미는 독재자들이 먼저 깨달았다.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블라디미르 레닌은 파블로프를 불러 연구를 정리해 달라고 했다. 3개월 뒤이니시스 주식
파블로프가 가져온 400페이지짜리 보고서를 레닌은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이튿날 파블로프를 부른 레닌은 매우 감격한 표정으로 “이로써 혁명의 미래가 보장됐다”고 말했다고 한다. 레닌은 이를 대중 심리 조작 기술로 간주했다.
심리 조작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특정 동작을 하도록 세뇌하는 걸 의미한다. 종만 울려도 침을 흘신 천지 게임
리는 개처럼, 인간도 그렇게 만들 수 있다.
레닌이 파블로프 연구의 가치를 알아본 지 100년이 넘었다. 만약 파블로프가 다시 살아 온다면 자신을 뛰어넘는 심리 조작 기술을 발휘하는 곳을 발견할 것이다.
바로 북한이다. 북한은 침을 흘리는 단계를 넘어 인간 전체를 집단 최면에 걸리게 하는 심리조작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인포라인
2018년 평양에서 열린 집단체조의 한 장면. 이 어린이들도 집단체조를 위해 최소 6개월 동안 훈련한다. 동아일보 DB
● 왜 집단체조를 계속 할까
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에도 북한은 집주식미수거래
단체조와 열병식을 진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하지 못하다 5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한국 언론은 북한이 수십만 명을 동원해 집단체조나 광장 열병식을 계속하는 이유를 잘못 분석한다. 국력 과시용이라고도 하고, 외화벌이를 위해서라고도 하는데 정확한 분석이 아니다.
집단체조에 평양 인구 약 200만 명 중 대략 10만 명이 동원된다. 인구 1000만의 서울로 치면 어린이와 젊은이 50만 명이 최소 6개월 동안 다른 일을 하지 않고 한자리에 모여 간단한 동작을 무한 반복 연습한다.
국력을 키우려면 이들을 일하게 만들어야 한다. 외화벌이용도 틀린 말이다. 외국인이 오지 않아도 집단체조와 열병식은 늘 한다.
북한이 대규모 군중 행사를 지속하는 진짜 이유는 파블로프의 개에서 찾아야 한다.
기자는 김일성대학교에 다니던 1990년대에 김일성광장에서 배경대(카드섹션하는 사람들)도 해 봤고 행진대도 해 봤다. 잠깐이지만 열병식 훈련에도 참가해 봤다.
배경대 훈련 실례를 하나 들어 보자. 9월 9일 공화국 창건 기념일을 위한 배경대 훈련은 6월 중순 시작됐다. 오전 5시부터 일어나 식사하고 광장까지 두 시간 가까이 걸어갔다.
광장 바닥에는 수만 개의 점이 찍혀 있다. 가로세로 약 70㎝ 사각형 모서리마다 60-132, 156-30 하는 식의 숫자가 붙어 있다. 각자에게 점 하나씩이 배당됐다. 석 달 동안 서 있어야 하는 자리다.
훈련은 매우 간단했다. 광장 주석단 지붕 가운데와 양 끝에 세 명의 신호수가 올라가 있다. 이들이 동시에 1부터 8까지 적힌 커다란 숫자판을 들면 우리는 3가지 종류의 꽃다발을 신호가 바뀔 때까지 쳐들고 있어야 했다.
가령 1번이 올라가면 빨간색 꽃다발을 들고, 2번은 노란색 꽃다발, 3번은 둘 다 같이, 5번은 빨간색 꽃다발을 열심히 흔드는 식이다. 자신이 서 있는 점에 따라 번호별로 다른 색 꽃다발을 들어야 했다. 그러면 김일성광장에 ‘김정은 장군 만세’ ‘경축’ ‘일심단결’ 따위의 글씨가 일사불란하게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머리가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이 8가지 동작을 익히는 데 드는 시간은 한나절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이 같은 단순 동작을 3개월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되풀이했다.
김일성광장 대리석 바닥은 한낮이면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막힌다. 그늘도 없고 물도 없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불판에 올린 생고기 신세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졌지만, 주변 백화점 건물이나 지하차도로 데리고 가 그늘에 눕혀 놓는 것이 유일한 치료였다. 그래도 치유되지 않으면 그 점은 다른 사람이 채웠다. 살이 익어 밤에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쓰라렸다. 그러나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수십만 명이 집단체조나 열병식, 군중 시위에 동원돼 광장에서 독재자를 위한 하나의 점으로 3~10개월을 존재해야 했다.
단순한 훈련도 3개월 하면 사람이 바뀐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선다. 동작을 따라가지 못하면 엄격한 자아비판과 호상비판, 연대책임과 추가 훈련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이질감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집단체조는 유치원생까지 참가한다. 평양에서는 집단체조에 참가해 보지 않은 학생을 찾기 어렵다. 왜 아이들을 6개월 넘게 간단한 훈련만 시키는가. 이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파블로프의 개처럼 세뇌하기 위해서다.
김 씨 일가에겐 평양이 제일 중요하다. 지방 도시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더라도 평양에서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 1970년대부터 출신성분이 나쁜 시민은 지방으로 추방하고,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을 뽑아 평양 시민으로 만들었다.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다는 것은 김일성의 말을 꼭두각시처럼 추종하는, 무식하고 말 잘 듣는 DNA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체제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머리 좋은 DNA는 외진 유배지로 끌려갔다.
세뇌에 취약한 계층으로 평양을 채워 넣고도 부족해 김 씨 일가는 집단체조를 통해 끊임없는 세뇌를 이어간다. 지방 반란은 군대가 진압하면 된다. 어쩌면 도시를 몽땅 쓸어버리고, 주동자의 8촌까지 멸족해 반역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양이 반역하면 큰일이다. 평양은 김 씨 일가 안전에 직결되는 도시다. 평양까지 봉기할 정도면 군도 제대로 통솔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군 열병식도 핵심 병력을 끊임없이 파블로프의 개로 세뇌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본질을 알게 되면 왜 북한이 엄청난 인력을 낭비하며 집단체조를 계속하는지, 열병식을 계속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씨 일가가 평양 시민과 군을 파블로프의 개로 세뇌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평양 집단체조와 열병식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장면. 북한군 열병대오가 김정은이 지켜보는 주석단 앞을 통과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 북한과 사이비 종교의 본질은 같다
파블로프의 개는 종과 먹이만 있으면 침을 흘린다. 하지만 인간의 세뇌는 개보다는 훨씬 어렵고 정교해야 한다. 특히 대중 전체를 세뇌하기 위해선 파블로프 실험을 훨씬 넘어서는 정교한 대중 심리 조작 기술이 동원돼야 한다.
북한 노동당 최고 인재들이 동원된 대중 세뇌 기술 전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는 북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큰 기술 몇 개는 체험에 기초해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을 세뇌시키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즉 정보가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외부 정보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당에서 주입하는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개혁·개방이란 말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지, 끊임없이 폐쇄 정책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김정은이 최근 몇 년 동안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육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만들어 외부 정보를 접한 사람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외부 세상을 알게 되면 하나의 사상이 주입되지 않는다. 파블로프의 개도 가만히 누워 있는 옆집 개가 더 맛있는 먹이를 먹는다는 것을 안다면 누워 있으려 하지 종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신비성을 조작해야 한다. 당이나 지도자는 신 같은 특별한 존재로서 신비성을 가져야 한다. 이런 방법은 사이비 종교 교주들도 쓴다. 자기는 대중을 구하는 신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중에게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하게 만든다. 자기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비판하고 폭로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서로 연대감을 높인다. 북한에서 생활총화와 호상비판을 계속 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네 번째로 이념 주입 단계에서 이념을 성스러운 과학으로 만든다. 이념을 의심하는 것은 신을 의심하는 것과 같은 죄로 인식시킨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김 씨 일가가 왜 자기 이름으로 어려운 철학사상 논문을 계속 발표할까. 바로 이념을 성스러운 과학으로 만들어야 대중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은 개인보다 높은 위치에 놓이도록 교육한다. 사회주의를 위해선 자기 한목숨 서슴없이 바치라고 교육하는 것이다.
교육만 해선 대중이 따르지 않는다. 상벌이 있어야 한다. 생존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동시에 죽음을 불사하며 지시를 따른 자에겐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사상 개조를 거부하고 지도자나 당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가족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전장에서 포로가 되기 보다 자폭 같은 행위를 하면 가족까지 책임져 준다는 당근을 주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북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신자들을 세뇌한다. 중동 자폭 테러범도 똑같은 과정과 방식으로 세뇌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 파시즘, 사이비 종교는 세뇌 방식이 모두 똑같다.
9일 북한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조선노동당 만세’의 한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 정교한 사상 주입 과정
사상을 주입하는 방식도 정교해야 한다.
우선 사람을 주변과 단절된 상태에 놓이게 한 뒤 정보 입력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과잉 주입시켜야 한다. 정보가 극단적으로 부족해 감각 차단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 입력하고자 하는 정보를 과잉 주입하면 뇌가 잘 받아들인다. 북한 매체에서 하루 종일 ‘김정은 원수님’ 타령을 하는 것이 이 같은 원리다.
옛 소련에서는 오랜 기간 격리되고 정보 유입이 제한된 정치범이 취조관 기분에 맞춰 자신의 죄를 꾸며낼 뿐 아니라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 일도 일어났다. 감각 차단 상태에서 생기는 심리 조작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둘째, 뇌와 육체를 지치게 만들어 딴생각할 여유를 빼앗아야 한다. 북한 당국이 왜 쥐꼬리만 한 배급 때문에 굶주린 인민을 ‘100일 전투’니 ‘200일 전투’니 하며 쉬지 않고 내몰고, 생활총화와 각종 강연회로 정신없이 들볶는 이유다.
심리 조작에서 제일 필요한 부분이다. 딴생각할 겨를없이 들볶으면 사상이 쉽게 주입된다. 대중을 피곤하고 지친 상태, 즉 결핍과 불안에 빠지게 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나면 이제 핵심 세뇌 과정으로 연결된다.
지도자나 이념을 따르면 영생이 기다린다고 주입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 사람들은 지도자를 위해 육체와 재산을 서슴없이 바치려는 심리 조작이 완전히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면 북한이 제대로 배급할 형편도 못 되면서 왜 장마당을 폐쇄해 인민을 배급에 의존하게 만들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배급제가 존재한 지난 반세기 넘는 기간 북한 인민은 한 번도 배 부르게 배급을 받아 본 일이 없다. 북한이 제일 잘 살았다는 1970년대 초반에도 한 달 배급을 받으면 늘 2~3일 분량이 모자라 동네를 돌며 식량을 꿔 먹게 만들었다.
이는 비단 북한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사이비 종교나 일부 다단계 사업체도 모집한 사람들을 먼저 폐쇄된 방에 가둬 잠을 재우지 않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 뒤 세뇌한다. 북한과 사이비 종교 원리는 같다. 기업이나 단체 연수원들이 왜 외진 곳에 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북한 김 씨 일가는 소련과 중국에서 배운 정교한 대중 심리 조작 기술을 80년 가까이 활용해 인민을 세뇌해 왔다. 김정은 얼굴만 봐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북한에서 사는 사람은 자기가 세뇌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한국처럼 모든 정보가 열려있는 사회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데 하물며 폐쇄된 북한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북한 인민이 당한 세뇌는 깰 수 있을까. 당연히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신이 죽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이 죽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그렇진 않다.
세뇌의 첫 단계, 외부와의 접촉 차단부터 풀어야 한다.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게 만드는 것이 북한 인민을 세뇌에서 구원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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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평양에서 열린 집단체조의 한 장면. 이 어린이들도 집단체조를 위해 최소 6개월 동안 훈련한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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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일에도 북한은 집주식미수거래
단체조와 열병식을 진행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에 하지 못하다 5년 만에 부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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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 바닥에는 수만 개의 점이 찍혀 있다. 가로세로 약 70㎝ 사각형 모서리마다 60-132, 156-30 하는 식의 숫자가 붙어 있다. 각자에게 점 하나씩이 배당됐다. 석 달 동안 서 있어야 하는 자리다.
훈련은 매우 간단했다. 광장 주석단 지붕 가운데와 양 끝에 세 명의 신호수가 올라가 있다. 이들이 동시에 1부터 8까지 적힌 커다란 숫자판을 들면 우리는 3가지 종류의 꽃다발을 신호가 바뀔 때까지 쳐들고 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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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좋고 나쁨과 상관없이 이 8가지 동작을 익히는 데 드는 시간은 한나절도 안 된다. 그럼에도 이 같은 단순 동작을 3개월 동안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하루 종일 되풀이했다.
김일성광장 대리석 바닥은 한낮이면 뜨겁게 달아올라 숨이 막힌다. 그늘도 없고 물도 없는 그곳에서 사람들은 불판에 올린 생고기 신세였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일사병으로 쓰러졌지만, 주변 백화점 건물이나 지하차도로 데리고 가 그늘에 눕혀 놓는 것이 유일한 치료였다. 그래도 치유되지 않으면 그 점은 다른 사람이 채웠다. 살이 익어 밤에는 잠도 자지 못할 정도로 쓰라렸다. 그러나 도망갈 수는 없었다.
그렇게 수십만 명이 집단체조나 열병식, 군중 시위에 동원돼 광장에서 독재자를 위한 하나의 점으로 3~10개월을 존재해야 했다.
단순한 훈련도 3개월 하면 사람이 바뀐다. 아무 생각도 없이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선다. 동작을 따라가지 못하면 엄격한 자아비판과 호상비판, 연대책임과 추가 훈련이라는 처벌을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집단에서 벗어나거나 이질감을 만드는 것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학습하게 된다.
집단체조는 유치원생까지 참가한다. 평양에서는 집단체조에 참가해 보지 않은 학생을 찾기 어렵다. 왜 아이들을 6개월 넘게 간단한 훈련만 시키는가. 이 아이들을 어렸을 때부터 파블로프의 개처럼 세뇌하기 위해서다.
김 씨 일가에겐 평양이 제일 중요하다. 지방 도시에서 민중 봉기가 일어나더라도 평양에서만 일어나지 않으면 된다. 1970년대부터 출신성분이 나쁜 시민은 지방으로 추방하고, 출신성분이 좋은 사람들을 뽑아 평양 시민으로 만들었다.
북한에서 출신성분이 좋다는 것은 김일성의 말을 꼭두각시처럼 추종하는, 무식하고 말 잘 듣는 DNA를 갖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체제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머리 좋은 DNA는 외진 유배지로 끌려갔다.
세뇌에 취약한 계층으로 평양을 채워 넣고도 부족해 김 씨 일가는 집단체조를 통해 끊임없는 세뇌를 이어간다. 지방 반란은 군대가 진압하면 된다. 어쩌면 도시를 몽땅 쓸어버리고, 주동자의 8촌까지 멸족해 반역 책임을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평양이 반역하면 큰일이다. 평양은 김 씨 일가 안전에 직결되는 도시다. 평양까지 봉기할 정도면 군도 제대로 통솔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군 열병식도 핵심 병력을 끊임없이 파블로프의 개로 세뇌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본질을 알게 되면 왜 북한이 엄청난 인력을 낭비하며 집단체조를 계속하는지, 열병식을 계속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김 씨 일가가 평양 시민과 군을 파블로프의 개로 세뇌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평양 집단체조와 열병식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 장면. 북한군 열병대오가 김정은이 지켜보는 주석단 앞을 통과하고 있다. 조선중앙TV 캡처
● 북한과 사이비 종교의 본질은 같다
파블로프의 개는 종과 먹이만 있으면 침을 흘린다. 하지만 인간의 세뇌는 개보다는 훨씬 어렵고 정교해야 한다. 특히 대중 전체를 세뇌하기 위해선 파블로프 실험을 훨씬 넘어서는 정교한 대중 심리 조작 기술이 동원돼야 한다.
북한 노동당 최고 인재들이 동원된 대중 세뇌 기술 전부를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기자는 북에서 살았던 경험을 토대로 큰 기술 몇 개는 체험에 기초해 이해할 수 있다.
대중을 세뇌시키려면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은 외부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이다. 즉 정보가 들어가지도 나가지도 못하게 해야 한다. 외부 정보가 들어가면 사람들이 당에서 주입하는 거짓말을 믿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왜 개혁·개방이란 말에 신경질적 반응을 보이는지, 끊임없이 폐쇄 정책을 추구하는지에 대한 해답이 여기에 있다. 김정은이 최근 몇 년 동안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육보장법’ ‘평양문화어보호법’ 등을 만들어 외부 정보를 접한 사람들에게 중형을 선고하는 이유도 설명이 된다.
외부 세상을 알게 되면 하나의 사상이 주입되지 않는다. 파블로프의 개도 가만히 누워 있는 옆집 개가 더 맛있는 먹이를 먹는다는 것을 안다면 누워 있으려 하지 종소리에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신비성을 조작해야 한다. 당이나 지도자는 신 같은 특별한 존재로서 신비성을 가져야 한다. 이런 방법은 사이비 종교 교주들도 쓴다. 자기는 대중을 구하는 신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세 번째는 대중에게 끊임없는 자기반성을 하게 만든다. 자기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도 비판하고 폭로하는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서로 연대감을 높인다. 북한에서 생활총화와 호상비판을 계속 시키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네 번째로 이념 주입 단계에서 이념을 성스러운 과학으로 만든다. 이념을 의심하는 것은 신을 의심하는 것과 같은 죄로 인식시킨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않은 김 씨 일가가 왜 자기 이름으로 어려운 철학사상 논문을 계속 발표할까. 바로 이념을 성스러운 과학으로 만들어야 대중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념은 개인보다 높은 위치에 놓이도록 교육한다. 사회주의를 위해선 자기 한목숨 서슴없이 바치라고 교육하는 것이다.
교육만 해선 대중이 따르지 않는다. 상벌이 있어야 한다. 생존은 누구에게나 보장되지 않는다는 걸 보여 준다. 동시에 죽음을 불사하며 지시를 따른 자에겐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 사상 개조를 거부하고 지도자나 당 지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이나 가족은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는 동시에 전장에서 포로가 되기 보다 자폭 같은 행위를 하면 가족까지 책임져 준다는 당근을 주는 것이다.
이런 원리는 북한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 많은 사이비 종교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신자들을 세뇌한다. 중동 자폭 테러범도 똑같은 과정과 방식으로 세뇌된다. 북한 같은 전체주의 국가와 파시즘, 사이비 종교는 세뇌 방식이 모두 똑같다.
9일 북한 평양 능라도 5월1일경기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80주년 기념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조선노동당 만세’의 한 장면. 조선중앙TV 캡처
● 정교한 사상 주입 과정
사상을 주입하는 방식도 정교해야 한다.
우선 사람을 주변과 단절된 상태에 놓이게 한 뒤 정보 입력을 극단적으로 제한하거나 과잉 주입시켜야 한다. 정보가 극단적으로 부족해 감각 차단 상태에 놓인 사람에게 입력하고자 하는 정보를 과잉 주입하면 뇌가 잘 받아들인다. 북한 매체에서 하루 종일 ‘김정은 원수님’ 타령을 하는 것이 이 같은 원리다.
옛 소련에서는 오랜 기간 격리되고 정보 유입이 제한된 정치범이 취조관 기분에 맞춰 자신의 죄를 꾸며낼 뿐 아니라 그것을 진실이라 믿는 일도 일어났다. 감각 차단 상태에서 생기는 심리 조작의 힘은 상상 이상이다.
둘째, 뇌와 육체를 지치게 만들어 딴생각할 여유를 빼앗아야 한다. 북한 당국이 왜 쥐꼬리만 한 배급 때문에 굶주린 인민을 ‘100일 전투’니 ‘200일 전투’니 하며 쉬지 않고 내몰고, 생활총화와 각종 강연회로 정신없이 들볶는 이유다.
심리 조작에서 제일 필요한 부분이다. 딴생각할 겨를없이 들볶으면 사상이 쉽게 주입된다. 대중을 피곤하고 지친 상태, 즉 결핍과 불안에 빠지게 해서 비판적으로 생각하는 힘을 빼앗고 나면 이제 핵심 세뇌 과정으로 연결된다.
지도자나 이념을 따르면 영생이 기다린다고 주입하는 것이다. 이 단계를 거치면 사람들은 지도자를 위해 육체와 재산을 서슴없이 바치려는 심리 조작이 완전히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면 북한이 제대로 배급할 형편도 못 되면서 왜 장마당을 폐쇄해 인민을 배급에 의존하게 만들려는지 이해할 수 있다. 배급제가 존재한 지난 반세기 넘는 기간 북한 인민은 한 번도 배 부르게 배급을 받아 본 일이 없다. 북한이 제일 잘 살았다는 1970년대 초반에도 한 달 배급을 받으면 늘 2~3일 분량이 모자라 동네를 돌며 식량을 꿔 먹게 만들었다.
이는 비단 북한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한국 사이비 종교나 일부 다단계 사업체도 모집한 사람들을 먼저 폐쇄된 방에 가둬 잠을 재우지 않아 피곤하고 지치게 만든 뒤 세뇌한다. 북한과 사이비 종교 원리는 같다. 기업이나 단체 연수원들이 왜 외진 곳에 있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북한 김 씨 일가는 소련과 중국에서 배운 정교한 대중 심리 조작 기술을 80년 가까이 활용해 인민을 세뇌해 왔다. 김정은 얼굴만 봐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흐르도록 만드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북한에서 사는 사람은 자기가 세뇌됐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한국처럼 모든 정보가 열려있는 사회에서도 사이비 종교에 빠지면 벗어나기 힘든데 하물며 폐쇄된 북한이야 더 말할 것이 없다.
북한 인민이 당한 세뇌는 깰 수 있을까. 당연히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신이 죽어야 한다는 점이다. 신이 죽지 않는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어야 할까. 그렇진 않다.
세뇌의 첫 단계, 외부와의 접촉 차단부터 풀어야 한다.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게 만드는 것이 북한 인민을 세뇌에서 구원하는 첫걸음이기도 하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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