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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뭐야."
한국전쟁 당시(1950년 6월~1953년 7월) 민간인은 거리서 수시로 마주치는 군인들의 이 질문에 답해야 했다. 냉전의 이념 갈등이 폭발한 시기, 답에 따라 목숨이 오갔다. 신간 '심문실의 한국전쟁'은 당시 스무 살이던 오세희가 고향으로 돌아가던 길에 국군을 마주친 뒤 "넌 뭐야"라는 질문을 받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오세희는 전쟁이 발발하자 비상시를 대비해 네 장의 문서를 항상 지니고 다녔다. 서울대 학생증,지킬박사
교사 자격증, 인민군이 발급한 애국자증명서, 유엔군이 살포한 귀항증이다. 각자 용도가 달랐는데, 앞의 두 장은 자신이 남한에 살고 있는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줄 용도로 경찰이 신분 증명을 요구하면 사용하고자 했다. 애국자증명서는 인민군이나 빨치산 유격대를 만났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봤다. 귀항증은 국군이나 유엔군을 만났을 때 유용할 것이마이다스v
라고 여겼다. 귀항증엔 "이 전단을 가진 자는 대열을 이탈하여 유엔군이나 국방군에게 귀항하라. 이 전단을 보이면 생명을 절대로 보장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미군정 아래 살던 평범한 한국인들은 이처럼 "각기 다른 집단들이 자신의 인격성을 각기 다르게 독해할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이런 가능성들에 대처하며 살아가는 법"을 체현금수령자대출
득해 갔다.

복잡다단한 전쟁의 현실
저자인 모니카 김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 역사학과 교수는 개별 국민의 삶에 초점을 맞춰 한국전쟁을 살핀다. 앞선 수많은 연구가 "한국전쟁의 성격을 주로 38선이라는 물리적 지형의 위아래 움직임"으로 파악했던 것과는 다른 지점이다. 그가 보기에 전쟁의 현실은실시간유가
남한과 북한, 국군과 인민군, 유엔군과 중공군의 싸움으로 깔끔하게 설명하기 어려웠다. 전쟁이란 이론이 아닌 실전이었으며 복잡다단한 양상으로 벌어졌다.
오세희도 총을 겨누는 국군을 향해 귀항증을 꺼내보였으나 무용지물이었다. 귀항증에 적힌 글자 그대로라면 국군은 그를 풀어줘야 했다. 하지만 군인은 "이 새끼야, 이런 거 소용없어!"라며 갈낙폭과대주
기갈기 찢어버렸고, 서울대 학생증과 교사 자격증도 한낱 종이 쪼가리가 돼 버렸다. 그는 결국 전쟁 포로가 된다.



부산 포로수용소에 새로 도착한 포로들이 1950년 10월 15일 입소 절차와 분류를 기다리고 있다. 국제적십자위원회 아카이브·후마니타스 제공


이런 양분되지 않는, 혼란한 양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장소가 전쟁 포로의 심문실이었다. 거듭되는 북진과 남진으로 포로가 늘어나면서 심문실엔 "넌 뭐야"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북한군 포로 중에는 38선 이북 출신뿐만 아니라 이남 출신도 있었으며, 우즈베키스탄이나 소련 북부에 거주하던 디아스포라도 있었다. 미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고 중국을 선택해 미국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린 21명의 미군 포로들 이야기도 나온다. 참전국들이 "포로 문제를 통해 상대방 국가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던 것을 감안하면 미국으로선 뼈아픈 사건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포로수용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일본계 미국인 청년들이 북한군 포로들의 통역을 맡거나 1급 심문관으로 활동하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발생했다.
저자는 "한국전쟁은 1950년 6월에 38선이라는 경계를 침범한 전쟁으로 시작되었지만, 1952년 초에 이르러서는 인간 주체의 권리, 즉 전쟁 포로의 자기 결정권이나 선택권의 침해를 두고 벌어지는 전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고 말한다.

"심문실은 주권, 정체성의 전장이었다"



'심문실의 한국전쟁'의 저자 모니카 김. 출처 맥아더 재단(MacArthur Foundation)


책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전쟁 포로에 대한 구금과 심문 과정을 집요하고 생생하게 되살린다. 거제도 유엔군 포로수용소에서의 심문 기록을 포함한 300건 이상의 조사 사례 모음과 중국과 북한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다가 귀환한 미군 포로 1,000여 명을 미군 방첩대가 심문한 기록은 저자가 이 책에서 처음 연구·분석한 자료다.
전쟁 포로로 시작된 이야기는 "국가가 그 국민에게 어떤 주장을 할 수 있는지, 1945년 이후의 세계 질서 안에서 어떤 국가가 합법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지"로까지 나아간다. 저자는 이 책으로 2022년 '천재들의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십을 수상했다. 맥아더재단은 수상 이유로 "모니카 김은 미국이 주장한 (자신이 돌아갈 나라를 직접 택하도록 한) '자발적 송환' 원칙이 심문실을 어떻게 주권, 정체성,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협상하고 다투는 중요한 공간으로 만들었는지 규명한다"고 밝혔다.



심문실의 한국전쟁·모니카 김 지음·김학재, 안중철 옮김·후마니타스 발행·512쪽·2만8,000원


송옥진 기자 click@hankookilbo.com